【이병기 칼럼】”국가개조”

【이병기 칼럼】”국가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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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과실연 명예대표, 서울대 교수) 칼럼】 2014.12.26. 과실연 창립 9주년 기념 총회 축사

“국가개조”

지금 동북아 정세를 살펴보면, 일본은 아베신조 수상이 집권한 후, 불안한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다. 10년 불황의 늪을 탈출하고자 엔화의 양적완화를 과감하게 시행했다. 미국과 군사 동맹을 강화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을 선포했다. 지난 14일 치른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여당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이 전체 의석의 2/3 이상을 확보함으로써, 이제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언제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하고 있다. 아베의 정책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일본은 이와 같이 국력을 결집하여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강성해지는 중국세력에 대한 대응을 적극 추진해왔다.

반대편의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강력한 지도력 하에 세계 G2 국가로 부상하는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조선-전자-자동차 등 전방위적으로 우리나라 산업의 우위를 압박하여 조만간 추월할 기세이고, 위안화를 달러화에 상응하는 기축통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미래 전략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현대적 식민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편, 중-일간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핵 개발 단계를 넘어서 핵을 운반할 능력까지 갖추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숨 막히는 동북아 각축의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왔는가? 경제 침체를 탈피하여 성장 궤도에 재진입하기 위해 어떤 거시적인 국가전략을 펼쳐왔는가? 점증하는 동북아 위기 속에서 어떠한 미래전략을 준비해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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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올 한해를 온통 ‘세월호 사건’으로 낭비해버렸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실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온 국민을 충격의 수렁으로 빠뜨렸고, 온 나라의 경제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그런데 수습과정도 문제 투성이였다. 진상 규명과 해결 처리 입법을 하겠다고 나선 정치권은 긴 세월동안 정쟁을 일으키며 국민의 여론만 악화시켰다. 초봄에 일어난 사건으로 늦가을까지 온 나라가 시끄럽게 들끓었다. 동북아 주변 정세는 칼바람처럼 험하게 위협해오고 있는데, 우리는 집안 일로 싸움질하며 세월을 허송했다.

실상, ‘세월호 사건’을 되돌아보면 사고원인에서부터 수습처리과정까지 모든 것이 ‘총제적 불실’이었다. 또 국가의 관리 시스템이 그런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만큼 허술했고, 공직자들은 무능했다. 법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편법이 무성했고 불법을 눈감아주는 부정부패가 난무했다. 또한 재난을 당해 일사불란하게 구조하고 처리하는 체계도 전문기술도 없었다. 더욱이, 책임자인 선장과 선원들은 제 목숨 부지하려 여객의 생명과 자기 임무를 헌신짝같이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망연자실, 절규했다. 이 나라는 과연 희망이 있는 나라인가? 우리는 과연 미래가 있는 국민인가?

이제 모든 것이 지나갔고, 이 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죽음을 되돌릴 길은 없다. 그러나 그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정통한 해결책을 찾아 결연하게 실천해야 한다. 나라와 국민이 환골탈태(換骨奪胎)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훗날 “외형적으로만 성장했던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일등국가로 전환된 것은 2014년 ‘세월호 사건’이 계기였다”는 역사적 평가가 나오도록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정통한 해결책을 강구했는가? 그래서 국가적 대변혁을 위한 전환점을 찾아냈는가? 그렇지 못하다. 국회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가동시켰으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야 힘겨루기’와 ‘책임자 호통 치기’로 일관했을 뿐, 제대로 된 객관적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제때 내놓지 못했다. ‘세월호 특별법’도, 그 필요성에 관한 설득력 있는 논의도 없이, 여야간의 기나긴 공방 끝에 사건 발생 200일이 지나서야 겨우 통과시켰다.

그래도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근본적인 변혁을 만들어갈 의지를 선포한 바 있다. 이 사건을 낳은 적폐(積弊)를 뿌리 뽑고 이를 계기로 나라를 새롭게 개조하겠다며,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국가개조(國家改造)”를 엄숙히 선언했다. 그런데 정부조직은 우여곡절 끝에 개편되었으나 그뿐이고, “국가개조”선언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여러 현안들에 묻혀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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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도 물론 당장 필요한 일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나라의 근본을 바로세우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우리의 ‘고질병’들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하여 국가와 국민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먼저 국민의 기본을 확립하고, 아울러 정부시스템을 개조하고 그 운영을 혁신하는 것이다.

박대통령이 ‘국가개조’를 선언했을 때는 그동안 줄곧 주장해오던 “켜켜이 쌓여온 적폐”를 바로 잡는 일, 즉 정부조직, 공직사회, 인사시스템 등에 대한 개편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주도할 새로운 총리와 장관들을 물색했던 것 같다. 행정 수반으로써 정부부문에서 개조의 시발점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실상 정부보다 더 큰 문제는 국회에 있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자질과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문제려니와 ‘국회선진화법’이후에 정체상태에 있는 의사결정시스템도 큰 문제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국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수준을 넘는 국회가 어디 있겠는가?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것, 여기에 ‘국가개조’의 무게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정부시스템의 개조’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기본을 확립’하는 것은 초중등 교육의 혁신에서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현실적으로, 학부모를 설득하고 이념화된 교육감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교육감과 교육부의 교육정책이 엇박자로 돌아가고 그 뒤를 정치적 세력이 받쳐주고 있는데, 공통 공감대를 만들어 교육혁신을 일궈내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분명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할 일이겠는가? 이것은 과연 한 정권이 해낼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리고 정부 주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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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신이든 정부부문의 개혁이든 이것을 성공적으로 실천해서 국가의 기본을 바꿀 수 있으려면, 3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 한다. 첫째 냉철한 원인 규명, 둘째 정도(正道)의 해결책 강구, 셋째 지속성 있는 실천운동이다. 그러나 5년 간격으로 정권이 바뀌고 4년 주기로 국회가 재구성되면서 모든 것을 뒤바꿔버리는 우리 사회 현실 속에서,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한 가지 가능한 답은 정권이나 정파에 초연한,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집단에 있다. 소위 “씽크탱크(think tank)”들이다. 그런데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연구집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결론을 내게 되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씽크탱크가 바르게 역할하려면 정부 자금에서 자유로운, “민간 씽크탱크”여야 한다.

교육 혁신을 통한 ‘국민의 기본 확립’은, 교육감의 이념이나 유관 정파의 이해에 무관한 ‘민간 씽크탱크’를 통해서, 원인을 바르게 규명하고 전문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부시스템의 개조’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과학기술, 산업, 방제 등 각 분야에 대한 세계적 수준의 ‘민간 씽크탱크’들이 필요하다. 그 씽크탱크들이 정권이나 정파를 초월하여 객관적으로 국가전략을 연구하여 정부에 제공하고 정부가 이를 채택하여 일관성 있게 실천할 때, 비로소 정부 정책이 임기응변성과 정권 간 단절성을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민간 씽크탱크’에 의한 원인 규명과 해결책 강구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세 번째 요소인 ‘일관성 있는 장기적 실천운동’이 아울러 필요하다. 옛날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고려 불교 정화를 위해서 만들었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같은 강력한 실천조직과 실천운동이 필요하다. 이것 없이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정부나 관변 조직은 그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정혜결사’와 같은 강력한 의지를 실천하는 바른 시민단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 같은 전국네트워크를 가진 바른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실천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다면, 그 때 비로소 세 번째 요소가 충족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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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몇 달이면 그 충격적인 사건도 망각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감정적으로 격앙될 때는 태산을 들어 옮길 것 같다가도 세월이 흐르면 결국은 ‘태산명동에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로 그치는 것이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숙고된 대안도 없고 이성적 해결 능력도 없이, 일이 터질 때면 북새통을 떨다가 임기응변으로 땜질식 대응이나 하고 만다. 이것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현주소이다. ‘국가개조’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개조해야 하는 것은, 실상, 이런 “적폐”들이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 대한민국을 만들어 내야한다. 근본적으로, 국민의 기본을 바로세우고 정부 시스템을 개조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뜻 있는 민초들, 기개 있는 ‘현대 선비’들, 그리고 사명감 있는 ‘한강의 기적’의 주역들이 나서야 한다. 각기 직분에 맞는 능력을 기여해서[各與其分] ‘민간 씽크탱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로 나온 근본적 해결책들을 바른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장기적인 실천운동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지금 누군가가 나서서 ‘민간 씽크탱크’라는 첫 “말뚝”을 박으면, 다른 누군가가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말뚝”을 박게 될 것이다. 그 “말뚝”들은 대한민국호(号)가 정권 교체라는 밀물 썰물에 표류하지 않고 안정되게 정박하도록 붙잡아 주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을 신원하는 바른길이고, 대한민국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설계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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