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산업·제조AI의 최상 테스트베드
부산·창원·사천·경주·포항 등과 연계땐
세계가 주목할 AI 혁신지대로 성장 가능
세계 모든 지역이 혁신으로 새로운 산업과 부(富)의 창출을 꿈꾸고 있지만, 그 결과는 엇갈리고 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변수가 성패를 결정하는 형국이다. 바로 ‘차별화’와 ‘공통화’다.
어떤 지역이든 ‘자기완결성(self sufficiency)’으로 번영을 이룰 수 있는 곳은 없다. 모든 지역이 ‘차별화’를 부르짓는 이유는 그 지역만의 강점을 찾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과의 분업을 위해서다. 인간의 본성인 ‘교환 성향(propensity to exchange)’은 ‘시장’을 만들고, 시장은 ‘분업’을 낳고, 분업은 ‘부’를 창출한다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 그대로다.
분업으로 부를 창출하더라도 부의 크기는 시장 사이즈에 따라 달라진다. ‘범위(scope)의 차원’에서 차별화가 필요하다면, ‘규모(scale)의 차원’에서는 교류하고 연결하는 지역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공통화’다.
차별화와 공통화는 같이 가야 한다. 울산을 말하지 않더라도 딱 보면 울산의 비전임을 알아챌 수 있어야 차별화다. 동시에 그 차별화는 울산과 손을 잡아야겠다는 확신을 다른 지역에 줄 수 있는 공통화를 유도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비전은 울산 안에서 끝나고 만다. 울산의 비전이 인접 지역으로, 국가 전체로, 그리고 세계로 뻗어갈 수 없다면 외부의 지식과 인재, 자금이 울산으로 흘러들어 올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Research Triangle Park)가 있다. 롤리(Raleigh)와 더럼(Durham), 채플힐(Chapel Hill) 세 지역이 저마다의 ‘차별화’와 시장을 키우는 ‘공통화’ 전략으로 손을 잡았다. 이제는 ‘트라이앵글(The Triangle)’이라고만 하면 모두가 아는 혁신클러스터의 유명 브랜드가 됐다. 그 핵심에는 세계적인 연구력을 보유한 듀크대가 자리하고 있다.
울산과 부산, 경남지역은 글로벌 연구 경쟁력을 가진 UNIST가 있다. UNIST를 기반으로 이들 지방자치단체가 차별화와 공통화로 뭉친다면 어떻게 될까?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는 전세를 일거에 바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미국과 중국이 산업의 판을 뒤흔들고 있는 절박한 위기 상황이다. 동남권이 탈출구를 열어준다면 한국이 번영의 역사를 다시 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인공지능(AI)이 산업의 판을 갈아치우고 있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배터리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입지하고 있는 울산은 산업·제조AI의 최상 테스트베드다. 그런 울산이 부산의 물류·금융AI, 창원의 국방·기계AI, 사천의 우주·항공AI와 연결한다면 세계가 주목할 AI 혁신지대가 탄생할 수 있다. 미국에 RTP가 있다면 한국에는 위 네 곳을 연결한 RQP(Research Quadrangle Park)가 있다고 자랑할 날이 오는 것이다. 그것도 ‘AI 쿼드랭글(AI Quadrangle)’이라는 신선한 브랜드로 말이다.
울산이 뻗어가야 할 곳은 부산, 경남만이 아니다. 경주(한수원), 포항(포스코)도 있다. 특히 포스코가 저탄소 전환에 성공하려면 수소환원철로 가는 로드맵의 조기 완성이 필수적이다. 수소의 경제성 확보가 절대적 명제다. 정부와 지자체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포스코가 한국에 남아 주기를 원한다면 이는 포스코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소도시 울산과 철강도시 포항뿐 아니라 광양까지의 전략적 연대가 요구된다.
북극 항로로 가는 동해안 시대가 오면 울산의 글로벌 연결망은 그 차원이 달라진다. 태평양을 넘어 대서양으로 그 반경이 확 팽창한다. 통일 한국이 실현되면 울산은 대륙의 철길을 따라 영국의 런던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 RTP의 탄생은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이탈이 발단이었다. 울산은 꿈을 찾는 청년이라면 너도나도 몰려들게 할 번영의 조건과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아무리 담대한 비전도 그 실현은 사람의 몫이다. 울산이 울산을 넘어서는 창조적인 자기 파괴의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