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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30990751

엄혹한 환경에 처한 자유시장경제
한국 위협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경제와 안보 묶는 강대국 전략
AI전환에 무너지는 民·軍 경계
큰 위기는 국가 재설계의 기회
민수·군수 간 선순환 구조 만들자
안현실 UNIST 연구부총장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이 세상에 나온 것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과 같은 1944년이다. 자유시장경제가 엄혹한 환경에 처해 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국가 단위와 세계경제 사이의 균열이 심화하고 있다. 포퓰리즘과 권위주의, 극심한 좌우 대치, 진실에 대한 불신, 전쟁은 불안을 증폭하고 있다. 폴라니의 역풍적 대전환이 소환되는 이유다.
세계의 대전환이라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대전환, 중국의 대전환, 유럽의 대전환이 할거(割據)하는 양상이다. 대국이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만 소국은 절박하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던 ‘안미경중(安美經中)’부터 그렇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지켜줄까. ‘아메리카 퍼스트’는 경제마저 위협한다. 거대 시장이던 중국은 한국 산업을 초토화할 기세다. ‘대만 유사시’ 같은 안보 위협은 설상가상이다. 가설이 다 깨지고 있다.
경제는 ‘최선(best)’을 추구하고 안보는 ‘최악(worst)’을 대비한다. 경제와 안보가 서로에게 불편한 이유다. 경제와 안보는 자원 배분에서도 ‘제로섬 게임’ 관계다. 하지만 이 또한 통째로 뒤집히고 있다. 세계는 약육강식이라는 지정학, 경제를 무기로 이용하는 지경학이 그 배경이다. 대국의 국익 우선주의는 경제와 안보를 ‘패키지’로 묶는다. 대국이 국가 안보와 공급망 위험 관리, 기술적 리더십의 이름으로 관리하는 전략산업은 ‘경제와 안보 교집합’이다.
경제안보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할 근거는 넘친다. 무엇보다 민수(民需)와 군수(軍需)의 경계 붕괴가 그렇다. 정치적 대전환 때문만이 아니다. 시대의 범용 기술(GPT) 인공지능(AI)이라는 기술적 대전환이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AI 없는 경제, AI 없는 안보는 더 이상 상상하기 어럽다.
세계적으로 투자가 늘어날 가장 확실한 분야가 국방인 점도 새 패러다임 손을 들어준다. 미·중 충돌은 양국 간 국방비 지출 경쟁의 강력한 신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가 아니라 3%, 4%로 높여야 할지 모른다. 한국, 일본 등도 그렇다. 안보적으로는 국방비 지출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기회다. 기업은 세계 경제의 블록화로 인한 비용 상승과 시장 위축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안보 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1970년대 비슷한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1960년대 농업 등 1차산업에서 공업화로 방향을 튼 것은 ‘신의 한 수’였지만 경공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 위협적이던 북한에 대응할 자주국방 또한 마찬가지였다(1970년대 후반에는 미국발(發) 미군 철수설 등장). 경제와 자주국방 두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전략 카드로 등장한 것이 중화학공업이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승부수는 적중했다. 선진국이 장악하던 중화학공업 도전에서 얻은 자신감은 이후 첨단산업, 정보화 투자로 이어졌다. 한국의 산업 지형도는 그렇게 완성됐다.
한국은 다시 경제와 안보 동시 위기에 직면했다. 그것도 세계적 차원의 위기다. 위기 돌파의 힌트는 새 패러다임에서 엿보인다. AI를 기반으로 경제안보 혁신 생태계를 다시 짜고, 안보를 전략산업화해 경제와의 교집합 영역을 대거 확장하는 전략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부, 국방부는 한국의 ‘빅3’ 연구개발(R&D) 부처다. 과기정통부 과학기술정책, 산업부 산업정책, 국방부 국방정책을 경제안보를 고리로 묶어야 할 때다. 민수가 군수로, 군수가 민수로 흘러가는 선순환이 일어나야 또 한 번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
AI 3강, 피지컬 AI 1강을 말하지만 세계가 블록화하는 마당에 등수는 의미 없다. 경제안보 관점에서 전략적 자율성(특정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 탈피)과 전략적 불가결성(한국만 제공할 수 있는 전략 자산 확보)으로 국가가 직면한 ‘실존적 위협’부터 해소할 일이다. 행정수도 세종시는 경제안보 차원에서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5극3특 지역 균형 전략은 에너지를 포함한 경제안보산업 육성과 재배치를 다뤄야 할 것이다. 국가 대위기는 국가 재설계의 기회다.
출처: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