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연 활동

과실연 활동

[과실연 성명서] 제58회 과학의 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은 어디로 갈 것인가

  • 날짜 2025.04.21
  • 조회수 209

58회 과학의 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은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까지 이렇게 암울한 과학의 날이 있었는지 모두 반성해야
전례 없는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창조적 자기 파괴만이 답
갈등을 넘어 정책과 성과로 승부하는...선진적인 과학-정치 관계로 가야
창의성 짓누르는 서열화 문화, 왜곡된 능력주의부터 시급히 타파하고
경제를 넘어 사회문제까지 적극 해결할 과학기술 탄력도확보해야
개발시대식 사고에서 벗어나 창조적 정부-민간 역할분담 고민 절실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67421, 대한민국 과학기술은 역사적인 출발점에 섰다. 정부는 과학 입국, 기술 자립이라는 원대한 국가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과학기술처라는 정부 조직을 만들었다. 그 이듬해인 1968년에는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과학문화 확산을 위하여 421일을 법정 기념일인 과학의 날로 지정했다. 과학기술인의 창조적 연구활동을 장려하고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는 국가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하 과실연)과학의 날이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고 평가한다. 과실연은 우리나라를 과학기술 친화적 사회, 과학기술에 기반한 합리적, 역동적인 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결성된 민간 사회단체다. 그 과실연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58회 과학의 날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이루어 낸 과학기술적 성과를 온 국민과 함께 자축하면서, 이를 가능하게 한 과학기술인들의 헌신적 노력과 국민의 성원에 감사를 드린다. 글로벌 Top 10 수준에 올라선 우리나라 기술력은 과학기술인의 빛나는 창의성, 불굴의 기업가 정신, 그리고 국민과 국가의 전폭적 지원이 만들어 낸 놀라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연구개발(R&D)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불과 50여 만에 세계 6위의 R&D 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 총생산의 5%R&D에 투자할 수 있게 지원한 국민적 성원의 덕분일 것이다. 우리가 개도국이 처하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면 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국민의 미래지향적 투자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제58회 과학의 날을 맞이해 우리는 과학기술의 앞날을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AI(인공지능), 양자 등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 기술의 등장, 이를 둘러싼 기술강국 들의 경쟁과 갈등, 자유무역과 보편적 국제질서의 붕괴 등 세계 환경은 급속하게 그리고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외부의 변화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기는커녕 내부의 앞날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과학의 날을 자축하기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걱정하면서 제2의 도약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정치권은 제 몸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고 미래를 걱정할 여유조차 안 보인다. 지금까지 이렇게 암울한 과학의 날은 없었다. 시대는 우리에게 전례 없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실연은 그동안 국가적 위기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지를 두고 치열한 내부토론을 이어왔다. 과실연 20주년 기념위원회는 치열한 내부 토론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과학기술이 제대로 가기 위한 네 가지의 창조적 파괴를 제시한다.

  • 첫째, 정치는 이념적 편가르기를 멈추고 올바른 정책으로 승부해야 하며, 과학기술은 정치중립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창출하는 선진형 과학기술-정치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 둘째, 우리 사회를 서열화하여 과학기술인의 창의성를 억누르는 왜곡된 능력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 셋째,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과학적 탄력도를 키워야 한다.
  • 넷째, 글로벌 Top 과학기술 국가에 걸맞은 세련된 과학기술 발전전략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해오던 정부주도 정책 계획(policy planning)’을 바탕으로 하는 개도국형 추격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정부는 공공 연구개발의 수요자, 민간 연구개발의 촉진자, 그리고 룰 셋터 (rule setter)’로서의 다면적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1. 과학기술과 정치의 관계 재정립과 관련하여
과학기술과 정치의 관계가 다시 정립되어야 한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과학과 정치는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갈등하는 관계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경우 과학기술은 정치의 보호, 지원 아래 육성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과학의 역사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산업화,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하여 정치가 주도하고 지원하여 우리 과학기술 기반을 구축하고 역량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처럼 과학기술의 정치 의존도가 높고 과학기술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도 많지 않다. 이러한 정치와 과학기술 간의 관계는 정치 권력의 교체가 단기화되면서 심한 폐단을 드러내고 있다. 기술개발은 목표와 자원 그리고 관리체제가 조화를 이루어야 성공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어떠한가? 출연 기관의 예를 보자. 정치가 바뀌면 연구개발 목표와 관계 없이 자원 배분도 바뀌고 연구개발을 지휘 관리하는 기관장도 바뀐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정파 간에 의미 있는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파 간에 과학기술정책 경쟁은 없고 자리 경쟁만 있다. 정부의 대학에 대한 개입과 간섭도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정치적 이념을 과학기술에 주입하여 갈등을 유발하고 과학기술인들을 편가르기하는 등 기막힌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원자력-신재생 에너지 갈등, 연구비 배분 문제로 인한 학제간 갈등이 그런 예이다. 과학기술은 데이터와 사실적 증거에 기반한 중립적인 특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선동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경쟁력을 좀 먹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정치는 올바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과학기술은 좋은 연구성과를 창출하는 정치-과학기술의 선진적인 관계 정립이 절실하다.

 2. 왜곡된 능력주의 타파와 관련하여
능력주의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잘 발현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는 개인 능력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각 분야의 조화로운 발전을 촉진하는 데 있지 않다. 분야를 서열화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능력을 평가함으로써 분야별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것이 인적, 물적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의과대학의 정원 확대가 우수인력의 이공계 이탈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좋은 사례다.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얼마나 잘못 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출신 대학, 종사하는 분야가 개인 능력의 척도가 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이 제대로 길러지고 발휘될 리 없다. 어떤 기술이 언제 어떻게 나타나 어떠한 분야를 만들어 낼지 모르는 최근의 과학기술 동향을 보면 특히 우리의 잘못된 능력주의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왜곡된 능력주의는 우리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걸림돌이다.

 3. 과학기술의 사회문제 대응력 강화와 관련하여
이제 우리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수단으로서의 단계를 넘어 사회문제해결에도 주된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문제 대응능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최근에 경험한 사회적·자연적 재난에 대한 우리의 과학기술적 대응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기후변화 등으로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사회적·자연적 재난에 대한 과학적 대응능력, , 우리 사회의 과학적 탄력도(scientific elasticity)’를 강화하는 것은 선진 사회를 준비하는 우리의 최우선 과제이다. 사회의 과학적 탄력도는 다양한 부문의 동원 가능한 과학적 역량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국내의 역량 강화는 물론 유사시 국제적으로 동원 가능한 과학 네트워크의 확충이 요구된다.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앞장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4. 과학기술 발전 목표와 수단의 조화와 관련하여
과학기술 정책의 목표와 전략·수단의 미스매치(mismatch)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은 추격 단계를 지나 창의적 선진 과학기술 국가로의 발전을 지향하고 있지만, 계획을 바탕으로 한 정부 주도의 계획형 전략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경제안보 시대를 맞아 목표를 명확히 하는 이른바 임무 지향형(mission-oriented) R&D’가 필요하며 정부와 민간의 역량 결집이 요구된다. 하지만 전문성이 부족한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주도해나가는 지나친 계획기반 연구는 지양해야 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장려한다고 하면서 경직된 관리형 행정절차를 요구하거나 R&D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경제지표로 재단하는 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비타당성 제도와 경직된 연구개발혁신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학기술은 불확실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실패가 당연하며 위험감수가 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획하는 R&D 행정하에서는 창의적 연구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낮은 위치에 달린 과일만 따 먹자는 식이어서 연구자들의 도전 의식을 억제하고 위험 회피형 연구 및 연구자만 살아남게 만든다. 정부의 무분별한 직접적 개입과 간섭은 과학기술계 및 연구자들의 정부 의존성을 심화시켜 문제해결 능력은 물론 자생력을 잃게 만든다. 정부가 오래 전 민간 PM(연구개발 프로젝트 관리자)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로는 공무원이 대부분의 의사결정에 간섭하며 실질적 PM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대로 된 민간 PM이 육성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정부는 공공 R&D의 수요자이자 민간 R&D의 촉진자이며, 그리고 시장의 룰을 정하는 룰 셋터 (rule setter)’이다. 직접적인 개입보다 보다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새로운 역할 정립을 고민해야 한다.

과실연은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이라는 20년 전 창립정신을 되새기며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설 것이다. 그리고 위에 제시한 창조적 파괴의 실현을 위해 앞장설 것을 다짐한다
 
 

2025년 4월 21일


 
과학의 날, 20주년을 맞이한 과실연


 
 
과실연(상임대표 안현실, UNIST 연구부총장):
2005년 과학기술 전문가 및 사회 각계의 인사들 265명이 모여,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시민단체인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과실연 , www.feelsci.org)’ 을 설립하였다. 바른 과학기술 사회를 이루기 위한 시민단체로서 과학적 사고과학적 방식을 근간으로 대한민국이 새롭게 변화하고 일류 경쟁력을 갖는 국가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 과실연은 과학기술계, 인문사회계의 다양한 분야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오픈포럼, 성명서 발표 등의 활동으로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과 관련해 여러 토론의 장을 열어 문제를 제기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SNS Share 페이스북 공유하기트위터 공유하기네이버 공유하기